용두산 공원에 가면(Feat. Google Translate) / Single channel video / 2015
임봉호 / 용두산에 가면(Feat. Google Translate) / Single channel video / 2015
Still cut
01. 작품 속의 현판 이미지는 광복로에서 용두산 공원으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의 끝 지점 상단부에 설치되어 있는 것을 비가 내리던 2015년 6월 25일에 촬영한 것이다.
02. 이날 용두산은 단 한 명의 행인도 없는 드문 풍경이 연출되었다. 매일 들어왔던 각기 다른 음정 박자로 ‘용두산 엘리지’를 부르짖던 목소리도 없었다.
03. 평소 이 장소는 여러 방향에서 올라오는 사람들의 각기 다른 이동 동선들이 교집합을 이루기에 가만히 발을 붙이고 주변을 정갈히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지기 어려운 곳이다.
04. 기묘하게도 비로 인한 불편 덕분에 인파에 의한 불편이 해소되어 조용히 주변을 돌아볼 수 있게 된다는 상황은 20세기 포크 음악에서나 느낄 수 있었던 낭만적인 상황이지 않은가.
05. 지난 1년간 이곳에 상주하면서도 아직 디디지 못한 위치들을 꼼꼼히 밟아나갔다, 아무도 없는 풍경 속에서 하나씩 따로 기억에 담는 스틸 이미지들은 익숙한 곳을 낯선 곳으로 느끼게 하며 소소한 즐거움을 내게 선사했다. 그 대가는 옷자락이 젖어가는 불편함이지만, 이 정도면 충분히 저렴하게 값을 치르는 것이다.
06. 그러다 발이 멈춘 자리에서 그 동안 신경 써서 읽어보지 못했던 현판의 문구를 곱씹으며, 감상 속의 나는 다시 현실로 돌아오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을 장면에 담았다.
용두산 공원에 가면 사랑이 이루어집니다.
눈부신 용두산빛터널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사랑의 프로포즈존으로 오세요.
뜨거운 사랑고백을 위한 아름다운
사랑의 자물쇠존에서 예쁜 추억을 담아가세요!
07. 불편한 띄어쓰기, 어색한 줄 바꿈, 부담스러운 외래어 혼합, 인위적으로 랜드마크를 부여하려는 시도, 가시성이 떨어지는 구조. 일상으로부터 초대받은 마법같은 감상이 깨지며 현실의 오류와 불편을 제시하는 또 다른 기묘한 경험은 잠시 단잠 속에서 꿈을 꾸다 깨어나, 그 속으로 돌아갈 수 없음을 느낄 때의 감정처럼 허무했다. 그리고 지나치게 빨리 제 자리로 돌아온 이성에 대한 겸연쩍음을 뒤로하고, 평소처럼 작업에 돌입했다.
08. 작품의 물리적 구성은 노래방 자막의 형태를 취하면서, 배경으로 삽입된 현판의 글을 국문에서 영문, 영문에서 국문으로 구글 번역기를 통해 변환한 것을 음성으로 바꾸어 훑어 나가는 것의 반복이며, 더 이상 변화가 생기지 않는 시점에서 종료된다.
09. 노래방 형식의 자막, 정지된 화면, 기계음성으로 읊어지는 반복 변환된 현판 문구는 빗소리와 함께 쏟아져 나오며 꿈과 허무를 거쳐 돌아온 이성이 복잡하고 정리 되지 않음을 그대로 나타냈다.
10. 각자 살아온 다양한 환경만큼이나 다양한 해석법이 존재하고, 해석의 과정을 거치다 보면 본래의 내용을 쉽게 짐작하기 어려워진다. 이 날은 들리지 않았지만 ‘용두산 엘리지’를 서로 다르게 부르던 어르신들의 목소리처럼 말이다.
댓글
이 글 공유하기
다른 글
-
Not in your dictionary(네 사전에는 없다) / 2015
Not in your dictionary(네 사전에는 없다) / 2015
2015.10.21 -
Live=eviL / Single channel video / 60sec / 2015
Live=eviL / Single channel video / 60sec / 2015
2015.08.24 -
맹세의 맹점 (Blind spot of the oath)
맹세의 맹점 (Blind spot of the oath)
2015.03.06 -
Not in your dictionary(네 사전에는 없다) / 2014
Not in your dictionary(네 사전에는 없다) / 2014
2014.1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