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부산에서 태어나, 경상도 어른들의 보살핌 속에 자랐다.
어느 정도 사고가 생긴 이후부터는 어른들의 이야기나 판단이 항상 옳은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상대적 약자에게 오히려 더 엄중한 잣대를 댄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대화를 시도해 본 적이 있다. 존재하지도 않는 ‘호적에 빨간 줄’ 이라는 무시무시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들은 내게 침묵은 금이라 했다. 막연한 공포에 의해 나는 무의식적으로 수용하게 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것이 금을 그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선 안에 있든 선 밖에 있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선이 존재하고 선을 인지하고 있는 현재의 우리가 중요하다. 이는 교과서의 빨간 밑줄 보다 중요한 우리가 존재하고 공존할 수 있는 가능성이다.
지금, 빨갱이를 혐오하던 그들은 스스로 붉은 옷을 입었다. 그리고 애국을 말한다.
누가 어떤 애국심을 말하는가?
움직이고 소리를 내야 한다. 그것은 우리가 살아있고,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