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오늘 / Single channel video / 24min 15sec / 2020
낯선 오늘, Single channel video, 24min 15sec, 2020, still
#낯선 오늘
Q. 이 작업의 경우 제가 느꼈을 때 어떤 일상과 비 일상의 경계를 상징적인 언어들과 사운드를 활용해서 제시하고 있어요. 우리가 지금은 코로나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에 매우 익숙한 경고 메시지들이 이 작업에 메커니즘 중에 가장 중요한 부분을 맡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구성으로 보면 사운드와 테스트를 의도적으로 다른 언어를 함께 제시해서 대립시키는 제스처가 가장 눈에 띄었어요. 혹시 어떤 의도로 작업을 진행했는지 궁금하고요, 수집된 질문 중에 하나를 뽑자면, 약간의 렉(Lag)이 걸린 것처럼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좀 불편함을 이야기하는 태도가 작업에 있어요. 어떤 경위로 작업을 진행을 했었는지.
A. 작품 속에서 삐~삐~삐~삐~ 하고 시끄럽게 나오는 소리는 재난 문자 알림음 이예요. 올해 2020년 초반에는 이 알림음은 쉴 새 없이 울렸었지요. 3월정도까지만 해도 긴급재난알림과 공공안전경보의 휴대폰 알림이 구분이 되어 있지 않았었다고 기억됩니다. 5분도 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쉬지 않고 울린 적도 있었지요. 저는 알림을 다 받고 읽어보는 편이었는데, 같은 내용이 반복해서 연속적으로 오는 경우도 있었었고, 문자가 연속으로 중첩되다 보니 가장 최근 온 문자부터 읽게 되면서 독해가 불편하다 느껴졌던 적도 있었습니다. 깜짝 놀라며 다급하게 확인해 보니 손 잘 씻고 다니라는 메시지였던 적도 있었고요. 그러다 어떤 계기로 본인은 알림을 모두 꺼 놓았다 하는 분을 만났고, 생각 보다 그런사람이 꽤 많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작은 일화로 ‘나와는 다른 사람들이 많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이 재난문자 라는 시스템과, 이것이 제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 것인가, 행정적인 편의만을 위한 일종의 구색과 같은 장치로 전락하게 될 위험성도 있지 않는가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자막에 사용된 글은 ‘로렘 입숨(Lorem ipsum)’입니다. 어도비 소프트웨어를 자주 사용하시는 분이라면 바로 쉽게 알아보셨으리라 생각해요. 텍스트 툴을 사용하면 자동으로 입력되는 문구거든요. 한글 입력의 경우 버전에 따라서 헌법이나 아리랑, 김춘수 시인의 ‘꽃’, 김상용 시인의 ‘남으로 창을 내겠소’, 정몽주 선생의 ‘단심가’, 최영 장군의 명언 등이 믹서기에 한데 넣고 돌려서 엎질러 놓은 듯 나열되기도 합니다. 아무튼 한글 버전도 영어 버전도 자연스런 문장이 되지 않게끔 되어있어요. 철자가 하나씩 빠지거나 단어 하나씩이 사라지거나, 그런 식으로 일부러 읽고 독해하기 어렵게 만든 거죠. ‘로렘 입숨’은 기입된 철자 내용이 주가 아녜요. 내용을 신경 쓰지 않도록, 예를 들어 디자인 레이아웃 같은 것을 정할 때 이 텍스트들을 활용해 형태 잡는 용도로 쓰는 거죠. 재미있는 게, 우리가 살면서 보고 듣기론 내용보다 형식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하는 경우는 거의 없지 않나요? 그 반대로 내용보다 형식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는 하지만요.
Q. 이 작업의 상영시간은 약 20분 정도로 알고 있는데 서서 감상하기엔 상당히 긴 시간이거든요. 실시간으로 진행되는 라이브방송은 아니지만 20분 동안의 시간 안에서 앞서 말씀드린 경고 사운드들이 전시장을 지나가는 행인들에게도 영향을 미치는 것 같아요. 특히 익숙한 사운드를 활용한 허구와 현실의 경계에 혼선이 오게 만든 부분이 흥미롭습니다. 거기서 나오는 ‘로렘 입숨’이라든지 혹은 그런 신호들에 대해서 더 설명을 해줄 수 있을까요?
A. 저는 어떠한 요소들을 작업 안에 깨알같이 집어넣는 것을 좋아해요. 저는 ‘씹을 거리’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물론 모든 작업이 그렇지는 않지만, 이 작업은 그에 상응하는 작업입니다. 음성과 자막은 서로 매치되지 않아요. 자막은 ‘로렘 입숨’이고, 라디오에서 나오는 것 같은 목소리는 다른 내용이니까요. 그것은 WHO 홈페이지에서 게재된 COVID-19에 대한 설명글들 중 일부를 발췌해 TTS(Text to Speech) 프로그램으로 변환한 것입니다. 신발을 통해서 감염되지 않는다. 후추를 많이 먹는 것이 예방효과가 있지 않다. 소독제를 먹어도 치료되지 않는다. 이런 내용들이예요. 우리의 상식으로도 아주 당연한 이야기들이지요. 이것은 제가 느꼈던 불편과 이어집니다. 올해 초부터 수 없이 받았던 문자의 내용 중에는 지극히 상식적이고, 당연한 내용들도 꽤 많았었습니다. 물론 그만큼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에 반복 강조하는 것이겠지요. 그러나 이미 그 부분을 잘 지키고 습관화 되어 있는 사람들에게는 공포와 피로감을 동시에 주는 장치가 됩니다. 쉽게 말해서 잔소리 듣는 것 같은 짜증이지요. 온도차가 필요합니다. 이 긴급한 창구에서는 정말 긴급한 내용만이 다루어져야 더욱 효과적인 것이라고요. 공공안전과 위기 극복을 위한 이 장치를 사람들이 피로하게 느끼게 되었을 때 과연 제 기능을 할 것인가 그런 이야기를 하려 했어요. 그리고 화면 자체를 예쁘고 뽑으려고 노력했어요. 영화 같은 느낌 보다는 그림 같은 느낌을 원했어요. 비현실적이지만 예쁜 바다 색깔로 말이죠. 요즘 말로 ‘물멍’이라 하는 것도 어느 정도 의도했고요. 전시장에서 바다를 보며 멍 때리는
분위기랄까요. 작품 속에 지나다니는 사람이 실제라 하면, 그 뒤에 보이는 바다빛은 현실적이지 않고, 또 광안대교 위의 교통체증은 지극히 또 현실적이고, 전시장에서 영상을 보는 것은 말이 되지만 영상을 보며 물멍은 조금 말이 안 맞는 이런 구조. 그러나 한편으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끝까지는 관람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어림잡아 3~4분 정도는 그래도 한 곳에 있지 않겠는가 하는 가정으로, 알림음 한번쯤은 듣고 갈 수 있게끔 간격을 잡고 보니 전체 시간이 24분이 되었어요. 제 작업들 중 가장 긴 재생시간입니다.
Q. 영상작업은 현장에서 완벽히 의도된 대로 촬영하기 어렵습니다. 그렇게 촬영해 온 결과물을 작업으로 만드는 과정에 대해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낯선 오늘’ 작업의 경우 리얼타임의 현장을 그대로 촬영해온 작업임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 의도된 스토리가 있어 보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지나가거나 노인과 라디오가 지나가면서 연출되는 부분들. 코로나19의 상황에서 경험 가능한 지정학적 문제들을 자연스럽게 연출하는 듯 하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매우 어려운 과정이라 보이는데 편집과정이라든지 작업내용을 조금만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세요.
A. 운이 좋아서 구상하고 상상했던 장면을 아주 쉽게 얻을 수 있었습니다. 광안대교 위의 차 밀리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는데 촬영을 출근시간대에 했어요. 그 장면을 활용하고 싶어서요. 시간대 정도만 생각하고 장소로 갔는데, 아주 맘에 드는 상황이라 1시간 정도 만에 촬영이 마무리 되었어요. 물론 출근시간대가 지나고 나면 교통체증이 눈에 띄게 줄어들기에 어차피 다음 날을 기약해야 하지만, 다시 나오지 않아도 되겠다 싶었어요. 아마도 한 번에 성공하지 못했다면, 될 때 까지 매일 출근했을 수도 있어요. 광안리 해수욕장의 구조가 인도와 백사장 사이에 나무가 심어진 화단과 큰 턱처럼 내려가는 계단 같은 게 있어요. ‘데크’라고도 하죠. 화단에 걸터앉아 자리 잡으니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완전 가깝거나, 멀거나 딱 구분이 되어 버리는 것도 현장에 나오기 전 약간 걱정과 우려했던 부분들이 애초에 발생할 수 없는 것이어서 아주아주 좋았고, 제가 그렇게 신경 쓰지 않아도 자연스레 이렇게 되는 것이 뭔가 다 딱딱 맞아떨어지는 것 같아 더 좋았습니다. 그래서 1시간 정도 만에 촬영이 마무리 되었어요. 그때 기억에 남는 것은 출근복장의 사람들이 생각보다 굉장히 많았어요. 누군가에게는 관광지이겠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겐 평범한 출근길. ‘그래도 우리는 오늘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라는 느낌이랄까요. 자전거를 타고 다니시는 분들을 봤을 때도 가벼운 운동 차림 보다는 등에 가방을 짊어지거나 핸들에 도시락 가방 같은 걸 걸고 가는 경우가 좀 더 많았다는 것이 신선했습니다.
2020. 11. 20(Fri) 17:00 아티스트 토크 내용 중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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