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적 언어, 사유 체계의 한계를 끊임없이 교정하는 해체적 방식. <박진희, 부산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
임봉호는 사회적으로 합의된 언어 기호에 상상을 더하여 사회에서 정의되거나 고착화되는 의미를 전복시키는 작업을 이어왔다. 작가는 평면. 영상. 설치 등 다양한 매체를 넘나들며 기호를 이미지로, 이미지를 소리로, 소리는 관객의 심리를 뒤흔드는 매개체로 활용하고 있다. 그리고 이전까지의 작업이 작가 개인의 삶과 사회에 대한 비틀어보기를 상징적으로 표현했다면, 이번 전시에서는 사회적 영역으로 보다 큰 스펙트럼을 구축하는 바가 보인다.
작가는 사회 속에서 정해져 버린 규칙의 틀을 떠나 보편적 상징현상들, 사회 이데올로기의 변화와 서사의 이면을 작업에서 최대한 수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전과 다르게 서사성을 충분히 수용하면서도 여전히 사회 구조 속 정의되어진 의미들을 전복시키거나 의구심을 들게 함에는 변함이 없다.
현재의 맥락에 비추어 볼 때,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현실은 애써 비틀어보기보다 그것이 향하는 상징과 희망, 욕망의 세계는 이미 비틀어져 있었다는 것 또한 발견하게 한다.
“보이는 것은 사실일 수 있으나 진실은 아닐 수 있다.”라는 작가의 말처럼 작품은 고착된 기호들 사이의 딜레마를 제시하고, 나아가 관객 스스로가 직접 의구심을 느끼도록 한다.
<부ㄷㅎ다>는 4채널 영상, 사운드작품이다. 작품 제목 또한 ‘부담하다’, ‘부딪히다’ 등으로 새로운 기호로 재연상된다. 사방에서 압도하는 손뼉 치는 손의 이미지들이 있는 공간 중심에 위치한 단상에 관람객을 세운다. 작품 안에서 관객은 관찰자가 되지만, 단상 위 천정에서 내려오는 소리와 리듬에 반응하는 소실점이 되기도 한다. 보는 주체자이며 리듬을 타는 박수소리의 들림에 반응하는 소실점이 되기도 한다. 보는 주체자이며 리듬을 타는 박수소리의 들림에 반응하는 이미지의 타자가 되기도 한다. 중첩되는 소리는 이미지(기호)와 상호작용하여 찬사, 조롱 등을 느끼게 하며 중심단상에 서 있는 관객에게 다양한 감정을 일으키며 삼켜버린다. 이전까지 예술작품 구현에 있어 단상은 작품을 위한 좌대인 것이었다면 임봉호의 작품 속 단상은 관객을 세움으로써, 관객의 반응을 최대한 수용함으로써, 비로써 하나의 작품으로 구현되는 것이다. 단상의 관객 또한 작품의 일부가 되어 다른 관객에게 보여지는 이미지, 작품으로 존재하게 된다. 이전 작업에서도 보이는 바가 있는데 작가는 관객의 행동을 제어, 제안하는 장치들로 작업의 다양한 완성범위를 도출한다.
<미사여구>는 3채널 영상에서 단어가 회전하는 장치구조를 서술적으로 통과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한국 현대사의 새로운 지평을 구축하는 역사적 사건인 2018년 9월 ‘평양공동선언’의 두 정상의 발언을 구성하는 단어(기호)가 작업의 소재이다. 단어들은 끝말잇기 슬롯게임의 형식으로 새롭게 생성된다. 남북한 두 정상 발언에서 발췌한 단어들은 작가의 개입으로 재구성된다. 첫 번째 영상의 시작은 소총의 발사로부터 시작된다. 6.25전쟁에서 쓰여진 무기의 스타트 총성이 들린다. 이는 이데올로기 전쟁인 한국전쟁의 시작을 의미한다. 두 번째 영상에서는 김정은 위언장의 발언은 붉은 단어로,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이 푸른 단어로 영상에서 회전하게 된다. 이 단어들은 슬롯머신처럼 회전하다가 두 정상이 발언한 공통의 단어에서 멈추게 된다. 선택된 단어(기호)의 조합은 마지막 영상에서 원고지로 옮겨져 끗말잇기로 규칙적으로 배열된다. 이는 마치 전쟁의 시작과 분단, 현재까지의 분단의 역사의 시간성을 함께 담고 있다. 작품은 이전까지의 분단된 민족의 화해와 평화의 새 시대의 희망을 담고 있는지, 희망이 전복되는 허구의 순환을 또다시 반복하는지 모호하게 존재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봉호단어장(Bongcabulary)>은 작가의 초기작품을 총망라하여 보여진다. 단어나 문구들의 조합들에서 모음 혹은 자음의 일부를 작가의 손으로 지우거나 더하는 방식으로 기존의 의미와 맥락을 변환시켜, 우리가 가지는 기성의 인식에 문제를 제기하며 사회 구조 속 불합리한 문제들을 위트 있게 비판하고 있다.
결국 임봉호의 예술작업은 우리 사회의 견고하게 정의되어진 기호의 권위와 권력을 전복시키고 더불어 관객이 느낀 감정과 인식의 달레마로 함께 완성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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